2021. 4. 12. 11:20ㆍ산문 마당/울타리 없는 정원
신년이 되고 두어 주가 지난 엊그제, 불현듯 스카브로에 사는 Y가 생각나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셔? 아무튼 피차 귀한 사람인 줄은 잘 알 테니, 우선은 각자 건강 잘 살피고 때 되면 실컷 봅시다!”
조금 지나 답장이 왔다.
“집사님, 모든 일이 형통하고 늘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답을 읽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누가 ‘본태성 장로’ 아니랄까 안부 전화 메시지에도 깎듯이 넥타이를 매셨네!
그는 캐나다에 와서 만난 오랜 친구이자 다니고 있는 교회의 장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 반이 되도록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세상 친구로도 허물이 없을 사이다. 그 정도면 진작에 반말에다 실없는 농담도 나누며 웃고 지내는 사이가 됐을 텐데, 반말은 고사하고 아직도 필자를 칭할 땐 꼭 ‘집사님’을 붙인다.
변함없는 사철 봄바람이 따로 없다. 특유의 맑은 표정으로 다가와 건네는 느릿한 말투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화를 내거나 누구와 다투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교회 일 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본인에게 꽤 부담스러운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잘 넘긴다. 분분하던 날파리 꿀꺽 삼킨 덤덤한 개구리 표정이 따로 없다. 타고난 성품이 아니고야 저럴 수가 있을까, 곁에서 답답하던 보는 이가 그만 웃고 만다.
“너무 F.M.(야전교범)대로 하는 것도 은혜가 아니거든! 가끔 육자배기도 섞고 뒷소리도 해야 인간미가 있지, 우리끼리 있을 땐 어이, 누구야~도 좀 하고 그래야 정들고 오래가지!”
믿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엔 전방부대 군종 사병으로 군 생활을 했던 사람이니 그 성정을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지만, 속으로 삼킨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칠까 염려가 되면 필자가 던지던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들추고 흔들어도 예의 바르고 성실한 그의 본태는 바뀌지 않았다. 하긴 장난기 넘치던 학창 시절에도, 일탈을 앞둔 패거리가 매번 끌어들이지 못하던 친구가 있긴 했다. 아무리 바람을 잡아도 꿈쩍 않는 모습에 열없어진 패거리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던 추억이 있다. Y는 꼭 그런 사람이다. 어디서나 본인의 숨소리 그대로를 지키는 변함없는 심성의 표상이다.
코비드-19 난국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다. 그간에 변한 게 한둘이 아니다. 거리 모습이 그렇고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에 만난 누군가의 불편한 표정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다가서니 시선을 피하며 얼른 자리를 피하려고 서두르는 듯한 몸짓에 적잖게 당황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모르는 건 아닌데, 모르긴 해도 Y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아마도 그라면 반가운 마음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얘기했을 거다.
“집사님, 2M라니 떨어지긴 하지만 마음은 늘 곁에 있으니 꼭 잡고 갑시다. 보고 싶으면 아무 때고 전화주세요. 새로 쓴 시 있으면 나눠주시고. 아내 집사님께도 안부 전해주시고."
손이야 맞잡진 못해도 느릿느릿 작별의 손짓을 섞으며 저만치 가도록 바라봤을 거다. 세상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산문집 '울타리 없는 정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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